default_top_notch
ad42
default_setNet1_2
ad43

나의 자랑,나의 프라이드

기사승인 2019.10.16  21:25:14

공유
default_news_ad1
ad35

사진@온라인커뮤니티
[김성춘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 세상 모든 사람은 자랑이 있을 것이고 프라이드가 있을 것이다. 누구는 부모가 장관이나 국회의원을 했다고 해서 그럴 것이고. 누구는 본인이 판·검사나 의사 출신이라서 그럴 것이며, 누구는 자식이 SKY대학을 다녀서 그럴 것이다. 10대 조상이나 사돈의 8촌도 거기에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자랑이나 프라이드는 이것들과 비교하면 너무나 초라하고 볼품이 없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고단한 삶을 살아왔다. 한신이 빨래하는 아낙으로부터 밥을 얻어먹었듯 나도 그러했고. 도연명이 이집 저집 다니며 구걸하듯 나 또한 그러했다.

이덕무가 겨울밤 불도 때지 않은 냉방에서 「맹자」나「논어」책을 찢어 이불로 삼듯 나도 그러했고, 중인(中人) 환쟁이 최북은 어느 겨울날 동대문 성문 밖에서 얼어 죽었는데 나는 이를 모면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진창 같은 삶이었고. 공교로운 생이었다.

이때 「고통은 인간의 가치를 증폭시키는 흥분제」라고 말한 광기의 어느 철학자 말을 알았거나 조선 중기 문인 노수신이 진도에 귀양 가서 심정을 나타낸 시구 「아. 첫째 노래여/ 나의 노래 애끊는데/희미한 등불/ 나를 위해 다시 불을 피우네.」를 알았다면 적잖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머리가 허연 여태까지「죽겠다.」거나 「힘들다.」거나 「못살겠다.」는 말을 한 마디도 안 하고 살아왔다. 짐승처럼 살았으되 짐승이 아니었고. 인간이되 신선을 꿈꾸었다. 귀족도 아니면서 「귀족정신」을 지니려 했고. 왕족이 아니면서 제왕학(帝王學)을 공부했다. 허장성세의 결정판이고 완전판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다 「부모를 원망하지 않고.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 3무(無)를 생활로 했다. 이건 감히 소인이 성인군자를 흉내 낸 것이고. 하늘의 질서를 어지럽혔다고 할 수 있다. 이걸 보고 세상의 이런 저런 금수저·은수저들은 어떻게 그것도 자랑이고 프라이드냐고 말들을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미간을 활짝 펴지 못하는 내 처지이지만,

이제는 지식은 어느 정도 노력하면 얻을 수 있고. 교양은 대단히 노력하면 쌓을 수 있지만 정신은 노력만으로는 안 되고 품성이 받쳐줘야 함도 알게 되고, 그 정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품이야말로 최고의 기품임도 알게 된다.

이제는 나팔꽃 한 송이나 별빛 한줄기에서도 무한(無限)을 느끼고. 부드러운 눈빛과 부드러운 안색이 최고의 보시(布施)임을 알아챈다.

이제는 희망도 덧없는 것처럼 절망도 덧없음을 깨닫는다.

어찌 나의 자랑, 나의 프리이드가 아니겠는가.

푸른한국닷컴, BLUKOREADOT

김성춘 kimmaeul@hanmail.net

<저작권자 © 푸른한국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ad39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