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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는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 실업학교 선린상고

기사승인 2023.12.01  21:4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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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선린인터넷고페이스북
우연히 선린상고에 대해 인터넷으로 보게 되었다. 교명도 바뀌었다. 선린상고에서 선린인터넷고등학교로...
 
[고성혁 군사전문기자] 내 기억에 선린상고는 일단 야구 잘하는 학교로 각인되어 있다. 내 모교 휘문이 야구에서 맨날 예선탈락할 때 선린상고는 우승 내지는 준우승 하던 야구 강호였다.
 
70년대 80년대는 상고 전성시대였다.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 마산상고, 덕수상고, 선린상고, 부산상고, 대구상고 등등...
 
그런데 이들 학교 이름에 죄다 바뀐 걸 최근에야 알았다. 강호동과 이만기가 나온 마산상고도 무슨 용마고등학교인가로 바뀐 것 같던데. 좀 아쉽다.
 
우리나라 최초의 상고가 바로 선린상고다. 선린상고는 머리가 좋은 학생이 가던 학교다. 상고중에서도 명문이었다. 그런데 고교 평준화가 되고 나라가 발전하면서 상고의 지위가 점차 하락하다가 지금와선 상고라는 이름을 버리고 거의 다 학교이름을 바꿨다.
 
선린상고 설립자는 일본인이다. 오쿠라 키하치로(大倉 喜八郎 : 1837~1928) 엄청나게 유명한 사람이다. 오쿠라 자이바츠(재벌)의 설립자로 니가타현의 농부집안에서 태어났다. 에도로 상경한 이후 1873년 오쿠라 자이바츠(재벌)의 모태가 되는 오쿠라상회를 설립한다.
 
오쿠라 키하치로는 우리로 말하면 최고의 부자 이병철 정주영 같은 레벨의 인물이다. 오쿠라는 일본에선 금융과 호텔업의 선구자로 여긴다.
 
일본에서 유명한 호텔 3곳이 제국 호텔, 호텔 오쿠라,호텔 뉴오타이니이다. 이중 하나인 호텔 오쿠라가 제국호텔 설립에 관여한 오쿠라 키하치로의 장남인 오쿠라 키시치로에 의해 설립되었다.
 
1927년 도쿄의 긴자지하철을 건설하였고 덕수궁 석조전을 시공한것도 오쿠라구미다. 오쿠라는 해외진출에도 적극적이였는데 조선에는 화약 등 군수품을 수출하였고 일본의 만주진출 이후 만주에서는 오쿠라 광업회사를 세워 광업에 진출하기도 하였다.
 
건설,토목,광업을 주력으로 한 오쿠라 재벌도 일본이 패전하자 GHQ(연합국 최고사령부)의 해체 대상이 되었고 오쿠라 재벌은 해체가 된다
 
일제시대 당시 교사들은 전부 일정시 고등상업(현 일본상업대학) 출신 일본인이었고, 오쿠라 는 조선최초의 상업교육을 한 선린상업학교뿐 아니고 오사카 상업학교(오쿠라 상고),도쿄경제대학 설립자였다.
 
선린상고 졸업자중 필자의 지인은 동문회서 숨기는 건 사실입니다. 지금도 칸사이 오쿠라고와 선린인고는 자매학교로 알고있습니다. 과거 제 재학시절 청파구락부라 해서 수십명의 일본동문들이 모교 방문및 어마어마한 자금도 장학금으로 내놓기도 했다고 전했다
 
용산 국립박물관에도 가면 오쿠라 컬랙션이 있다. 그가 일제에 병합된 이 땅에 들어와서 사업을 하는데 문제는 상업 부기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오쿠라가 세운 상업인 육성 전문학교가 바로 선린상고였다. 일본인과 한국인을 반반 입학하도록 해서 교육했다.어찌보면 한반도에서 시행된 최초의 가장 실용적인 학문이자 교육이 상업이었고 그 기관이 선린상고였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124년이라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학교로,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서울공업고등학교와 전신을 공유한다.

오랜 역사로 독립운동가 방정환, 시인 김수영, 박노해, 천문학자 이원철 등을 비롯한 유명 인사와 김세련 한국은행 총재,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회장 등 금융계 유명 동문들을 많이 배출했다.
 
선린상고는 1899년 6월, 대한제국 정부에서 6월 24일 명동2가 25번지에 관립 상공학교 관제 공포, 1904년 9월, 관립 농상공학교로 교명 변경,1908년 1회 졸업생을 배출한다.1906년 10월, 농과는 수원농림학교, 공과는 공업전습소, 상과는 선린상업학교로 분리되어 교명이 변경된다.1907년 4월, 관립 농상공학교의 상과생 5명을 인수하고, 12년제 신입생 50명을 모집하여 개교한다.1908년 3월,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한다. 1913년 4월, 현재 위치인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 3가 131번지로 교사를 신축 이전한다.
 
그렇게 선린상고를 졸업한 많은 조선인들은 이 땅에서 경제의 핵심역할을 수행했다. 경남. 특히 부산을 제외한 서부경남쪽은 과거에 보면 마산상고 출신들이 주름잡았다. 그만큼 상고출신들은 실물경제의 실질적 실력자들로 한국경제의 주역을 담당했었다.
 
그런데 나무위키나 민족대백과 지식백과에서 선린상고에 대해 알아보면 선린상고 설립자 오쿠라 키하치로에 대해선 단 한줄, 단 한 단어도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는 선린인터넷고등학교 홈페이지를 가봐도 설립자 오쿠라 키하치로는 없다. 스스로 뿌리를 부정한 것이다.
 
다시한번 이야기 하지만 이 땅에 최초의 상업 전문 교육기관 선린상고의 설립자는 일본의 재벌 오쿠라 키하치로다.
 
혹시나 학교에선 이런 내용을 알고는 있는지 궁금해서 전화를 넣어봤다. 일선직에선 아는 사람이 없어서 결국 교장과 통화했다. 교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린 공립학교라서 설립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관심없습니다. "
 
이것이 선린인터넷고등학교 교장의 답변이었다. 
 
 

푸른한국닷컴, BLUEKOREADOT

고성혁 sdkoh4061@naver.com

<저작권자 © 푸른한국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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