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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사 |
[박진아 기자=푸른한국닷컴] ‘명동 황제’로 불리던 1세대 조폭 신상사(본명 신상현)가 지난 10일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1932년 경기도 경성부 관수동(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수동)에서 출생했다. 양복점을 운영한 부친 덕에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지 않았다.
학창시절 운동을 좋아해 권투, 유도, 검도를 배웠다. 이후 숭실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지만 일본어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본인 교사에게 자주 심한 체벌을 당했고, 이 때문에 학업에 충실하지 못해 결국 졸업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후 고인은 1949년 육군에 입대했다. 이후 지리산 공비 토벌 작전에 투입되고, 6·25 전쟁 당시 경북 영덕군에서 북한군과 전투를 벌이다 총상을 입기도 했다. 1953년 대구 특무부대에서 1등 상사로 전역한 경력 때문에 ‘신상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고인은 1958년 9월 정치 깡패 이정재와의 ‘충정로 도끼 사건’으로 구속돼 1년 6개월 간 투옥됐다. 감옥에서 나온 직후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이정재가 사형 당하자, 1960년대 중반 조직을 재건했다. 고인은 1970년대까지 명동을 장악하고 신상사파의 보스로 활동했다.
전국구 두독 조창조는 2008년 인터뷰에서 “사실 달걀로 바위치기였어요. 부끄러운 얘기지요. 사보이호텔사건으로 신상사파라는 조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됐습니다. 신상사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사건이 나자 서울사람들의 응집력이 강하게 나타나더군요. 평상시 숨어 있던 신상사파의 방대한 세력이 드러났습니다. 힘으로도 돈으로도 백으로도 우리가 이길 수 없었습니다. 당시 양은이가 20대였습니다. 뭘 알겠습니까."라고 언급했다.
이러한 이야기로 알 수 있듯 사실이 한참 와전되어 신상사가 조양은에게 칼부림을 당해 패배하거나 은퇴했다는 말이 꾸준히 잘못 알려져 왔다.
고인은 회고록에 “지금의 주먹 세계는 돈과 폭력만 있을 뿐 낭만과 가치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신씨가 활동을 하던 시기 조폭들은 칼 같은 흉기를 사용하거나 다수가 소수를 공격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인은 1975년 1월 신상사파가 범호남파 행동대장 조양은에게 습격을 당한 ‘사보이호텔 습격 사건’ 이후 상대의 사과를 흔쾌히 받아들이고 합의서를 써줬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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