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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표 별세, ‘영원한 재야’ ‘영원한 안식’ 찾다

기사승인 2024.09.22  18: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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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표
과거 '재야 운동권의 대부’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22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서원일 기자=푸른한국닷컴] 장기표 원장은 이날 오전 1시35분께 입원 중이던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담낭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1945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고인은 마산공고를 졸업하고 1966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으나 전태일 열사의 분신 사건을 계기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투신하면서 1995년에야 졸업했다.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을 시작으로 민청학련사건, 청계피복노조 사건, 민중당 사건 등으로 9년간 수감 생활을 하고 12년간 수배 생활을 하는 등 1970~80년대 수 차례 투옥과 석방을 거듭했고, 12년간 수배 생활을 했다.
 
숱한 수감·도망 생활에도 민주화 운동에 따른 보상금을 일절 수령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19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국민 된 도리, 지식인의 도리로 안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1970년 전태일 사후에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와 만나 시신을 인수하고 서울대 학생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데 앞장섰다.
 
1990년에는 현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재오 전 의원, 김문수 현 고용노동부 장관 등과 함께 민중당 창당에 앞장서면서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개혁신당, 한국사회민주당, 녹색사민당, 새정치연대 등을 창당하며 새로운 정치를 계속 실험했다.
 
21대 총선에서는 현재 보수정당(현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 후보로까지 옮겨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국민의힘을 탈당해 특권폐지당 창당을 추진하던 중 원외 정당 가락당에 합류해 가락특권폐지당으로 22대 총선에 후보를 냈으나 원내 입성에 실패하고, 세 차례 대선에도 출마를 선언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처럼 한평생 노동·시민운동에 헌신했음에도 결국 제도권 정계로는 진출하지 못해 '영원한 재야'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으로 우리 시대를 지키신 진정한 귀감이셨다”라며 애도했다.
 
이어 “장 선생의 뜻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족분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고 덧붙였다.
 

푸른한국닷컴, BLUKOREADOT

서원일 swil@bluekoreadot.com

<저작권자 © 푸른한국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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