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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성기. 사진@아티스트컴퍼니 |
[박진아 기자=푸른한국닷컴] 5일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에 따르면 안성기는 이날 오전 9시 지병으로 투병 중 별세했다.
안성기는 2020년 혈액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에도 연기와 자선 활동을 이어왔으나 지난달 31일 자택에서 음식물을 먹다 목에 걸려 쓰러진 후 심폐소생술(CPR)을 받으며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학교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하늘의 별이 되었다.
안성기는 1951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라 한국외대 베트남어과를 졸업했다. 당시에는 대졸자가 영화배우가 되는 일은 흔치않았다. 1950년대에 출발해 2020년대를 아우르는 그의 출연작은 170여편이다.
안성기 여섯살 때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1957) 아역으로 처음 영화에 출연했다. 부친 안화영씨가 김 감독과 친구였던 인연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후 약 70편에서 주로 개구쟁이 역할을 하다가 중학교 3학년 때 찍은 ‘젊은 느티나무’(1968)를 끝으로 10년 정도 활동을 중단했다.
1976년 군에서 제대하고 영화 기획 일을 하던 부친의 영향으로 계몽영화 ‘병사와 아가씨’(1977) 조연을 맡으며 다시 배우가 됐다.
본격적인 배우의 길은 이장호 감독의 재기작 ’바람 불어 좋은날’(1980)’의 중국집 배달부 덕배 역으로 시작됐다. 이후‘고래사냥’(1984), ‘깊고 푸른 밤’(1985), ‘칠수와 만수’(1988)’, ‘개그맨’(1988), ‘하얀 전쟁’(1992), ‘투캅스’(1993), ‘태백산맥’(1994), 최초의 천만영화인 ‘실미도’(2003), ‘라디오 스타’(2006) 등 수많은 작품으로 사랑받았다.
주조연을 가리지 않은 그의 연기는 폭넓고 변화무쌍했다. 흔히 말하듯 ‘거지(‘고래사냥’)에서부터 대통령(‘피아노 치는 대통령’, ‘한반도’)까지 두루 연기했다. 특히 과잉을 찾아볼 수 없는 담백한 표현에 담긴 비애와 웃음의 진폭이 독보적이었다.
임권택 감독은 “안성기는 누구도 할 수 없는 역할이 생겨났을 때 그걸 해낼 수 있는 배우”라고 했다.
배창호 감독은 “카멜레온 같다”며 “뚜렷한 카리스마를 지닌 배우라기보다는 어떤 색도 입힐 수 있는 무채색의 배우”라고 평가했다.
이어 “고뇌, 우수, 사랑과 같은 기본적인 특질을 갖고 있는가 하면, 그 밖의 모습으로도 변신할 수 있는 배우”라고 회상했다.
안성기는 오랜 기간 정상에 있었으나 성실하고 절제된 자세로 흔한 스캔들조차 한 번 없었으며 신의와 예의를 금과옥조로 여겼다.
국내 3대 영화 시상식인 청룡영화상·백상예술대상·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모두 받았다. 1982년 제21회 대종상 남우주연상(‘철인들’)을 시작으로 2012년 제48회 백상예술대상 남자 최우수연기상(‘부러진 화살’)까지 무려 30년에 걸쳐 꾸준히 정상의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자신의 출연작 중 가장 좋아한 영화는 ‘라디오 스타’였다. “자극적이지 않고 사람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영화라서 좋다”고 했다.
그 자신이 그런 배우였다. 자극적이지 않고 사람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연기로 모두의 마음을 움직인 진정한 ‘국민배우’였다.
유족은 아내 오소영씨, 아들 안다빈·필립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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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 pja@bluekoread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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