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35
![]() |
| 안호원 본지 칼럼위원 |
안호원(한국 열린 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특임교수. 상담학 박사) 구화지문(口禍之門)이라는 말이 있다. 즉 ‘입은 재앙이 드나드는 문’이라는 뜻이다. 당나라 말기 재상 풍도는 ‘설시(舌詩)’에서 ‘혀는 자신의 몸을 자르는 칼’이라고 했다.
칼은 본래 남을 향해 휘두르는 것이지만 말이라는 칼은 결국 자신을 먼저 베고 만다.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내뱉은 한마디가 평생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되고, 충동적으로 올린 SNS 글 하나가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경우를 우리는 숱하게 봐왔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정치권의 막말 논란도 마찬가지. 상대진영을 향한 조롱과 비난은 갈수록 거칠어지고 한순간의 실언이 정책과 비전을 집어삼키기도 한다. 그때마다 당사자들은 “진의가 왜곡됐다.”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해명하지만 이미 시위를 떠난 ‘말(諺語) 화살’은 되돌릴 수 없다.
정치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보통시민도 마찬가지다. 과거 발언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유명인은 오래전 SNS 게시물에 대해 변명을 하거나 사과문을 올리기도 한다. 문제는 예전에는 실수(?)로 한 말이 그 자리에 있던 몇몇 사람의 기억 속에 남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말과 글이 빛의 속도로 전파된다. 말은 빨라졌지만 생각은 짧아졌다. 숙성되지 않은 말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온다. 인간의 말(言語)은 대체로 인간의 부패성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말들을 남발하며 살아가는 지 모른다. 습관적으로 거짓된 말, 아첨하는 말, 위선적인 말로부터 시작해 자신을 높이고 자랑하는 말까지 마구 쏟아내고 들으며 짧은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말’은 ‘약(藥)’과 같아서 적당히 달여 쓰지 않으면 ‘독(毒)’이 될 수도 있어
이 세상에는 ‘말’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말’ 때문에 불행을 자초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오죽하면 혀뿌리를 조심하라는 옛 속담도 있지 않은가.
우리는 흔히 이 세상을 살면서 무심코 한 말이 불씨가 되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철천지 원수가 되고, 더 없이 귀한 친구가 되기도 하는 것을 주위에서 쉽게 접하게 된다.
결국 말을 할 때 신중함을 보이는 사람은 남들에게 기쁨과 흼망을 준다. 그러나 어떤이들은 불필요한 말로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말’은 ‘약(藥)’과 같아서 적당히 달여 쓰지 않으면 ‘독(毒)’이 될 수도 있다.
모로코 속담에도 ‘말이 주는 상처는 검(劍)이 주는 상처보다 깊다.’라는 말이 있다. 말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를 날마다 체험하고 느끼고 충고도 받으면서도 쉽게 바꾸지를 못한다.
자신이 무심코 내뱉은 언어의 폭력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오기도 한다. 누구든 인간이기에 실언. 실수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 교활한 인간은 실수를 번복하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면서도 상대방, 특히 약자와 소외된 사람에게는 눈을 부라리며 정죄(定罪)를 하려 든다.
옛사람들은 이미 오래전 그 해답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과언무환(寡言無患). 말이 적으면 근심이 없고, 신언무우(愼言無尤) 말을 삼가면 허물이 없다고 여겼다.
품격이란 결국 쌓이고 쌓인 말의 탑
생전의 법정스님도 “사람은 모두 입안에 도기를 갖고 태어났다.”며 “어리석은 중생들이 말을 함부로 하여 그 도끼로 자신을 찍고 만다.”며 안타까워했다.
한 사람의 됨됨이를 뜻하는 한자 품(品)은 입 구(口) 세 개가 쌓여 이뤄진 글자다. 즉 품격이란 결국 쌓이고 쌓인 말의 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보지도, 듣지도 말 것까지야 없지만 본 것을, 들은 것을 모두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전
철 안에서 본 광고 문구 중 ‘아, 쉽다’와 ‘아쉽다.’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똑같은 세글자임에도 띄어 쓰고, 붙여씀에 따라 느낌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이 같은 차이가 얼마 전 모 여성단체 총회에서 일어났다. 이날 총회에 앞서 한 대의원이 자신의 포상추천과 관련 집행부의 임원이 ‘저런 사람을’이라는 표현을 썼다며 해명을 요구했다.
결국 훈장을 받은바 있는 ‘저런 분을 어떻게 장관 표창을 상신 할수 있느냐’라는 말이 와전된 것임이 밝혀져 해프닝으로 끝난 사건이었다.
이 경우도 앞말을 빼고 ‘저런 분을...’ ‘저런 사람’으로 전달했기 때문에 듣는 당사자로서는 불쾌할 수밖에 없는 등 엄청난 차이를 보일 뿐만 아니라 오해의 감정을 불러올 소지가 있는 것이다.
인간이란 드러남과 속내가 갈등하는 이중성의 문화 속에서 자신을 적절히 변화시키며 살아가는 정치적 동물이다. 아무 생각 없이 연못에 던진 돌이라 해도 연못 속 개구리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푸른한국닷컴, BLUEKOREADOT
안호원 egis0191@hanmail.net
<저작권자 © 푸른한국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