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 전 총리 및 그 일가 무개념으로 대한민국 보수우파를 배신했다.
[전영준 푸른한국닷컴 대표]본지는 6.4 지방선거 당시 ‘2014.6.4 지방선거 격전,최후의 승자는 누구’라는 섹션을 운영한 바 있다. 이후 선거가 끝났는데도 본지는 내리지 않고 계속 메인에 유지했다.

▲ 박태준 전 총리.사진@다음프로필
6.4 지방선거의 결과를 어떻게 종결해야 할지 고민을 했기 때문이다.이제는 고승덕 딸 파문에 일조한 박태준 전 총리(이하 박태준)을 재평가함으로서 막을 내리려 한다.
조선일보가 ‘위대한 만남-박정희와 박태준’이라는 제목으로 박태준의 생전 공적을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평가를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박태준의 ‘의리 돌쇠’만 부각하고 있지 그가 정말로 국가를 생각했는지는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월31일 자신을 고 후보의 딸이라고 소개한 고희경씨(27·미국명 캔디 고)씨는 이날 필명 ‘고캔디’로 활동 중인 페이스북에 ‘서울시민에게(To the Citizens of Seoul)’라는 제목으로 “나는 서울시민이 아니다. 하지만 서울시 교육의 미래를 걱정해 글을 썼다. 서울시민은 교육을 담당할 사람에 대한 진실을 접할 자격이 있다”며 “나의 부친인 고승덕은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교육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어린시절부터 기억을 할 수 있는 나이로 자랄 때까지 아버지는 우리에게 어떤 것도 가르치지 않았다”고 폭탄선언 해 그 여파로 지난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풍지박산됐다.
이에 고승덕은 지난 6월1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장인이었던 박태준 일가를 비난하며, 이를 박태준 일가와 문용린 서울시 교육감 후보의 ‘정치 야합’이라고 반격했다.
그러나 물은 이미 엎질러 진 것.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높은 지명도로 선두를 달리던 고승덕 후보는 3일 후 패배라는 통지서를 받아야 했다.
고승덕은 지난 84년 수원지방법원 판사시절 박태준 전 포스코회장의 둘째 딸 박유아씨와 결혼해서 1남1녀를 두었다. 고승덕은 2002년 박씨와 이혼했으며 박씨는 미국 뉴욕에서 거주 중이다.
한편 고승덕은 과거 전 부인이 미국에 가서 살자고 권유했을 때 정치권 입문 등의 이유로 서울에 살겠다고 하자 결국은 이혼하게 됐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또 고승덕은 아이들에게 누구와 살겠냐고 하자 아이들이 엄마와 살겠다고 해 아이들의 의사를 존중해 양육권을 전처에게 주었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엄격히 따지면 고승덕은 자식을 버린 것이 아니라, 고승덕의 전처 박씨가 자식들을 데리고 뉴욕으로 간 것이라고 해야 정확한 것이다.
고승덕 전처와 그 딸이 전 남편과 아버지를 통해 눈물을 흘렸다고 비판한다면, 존경하는 아버지와 외할아버지로 인해 김대중 정권이 탄생됐다는 사실을 어떻게 헤아릴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김대중 정권 탄생을 박태준 가족들이 정당화한다면 위대한 만남의 상대인 박정희를 추종하는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은 박태준이를 배은망덕한 사람이라 폄하해야 하는 논리에 빠진다.
∎ 박태준은 보수우파의 공적으로 1997년 DJP정권의 한 축으로,그는 김대중 정권시절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박태준은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그해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 후보 진영과 대립하다가 민자당을 탈당한 뒤 1993년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포항종합제철 명예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대선 직전 김영삼 후보가 광양까지 찾아가 도와달라고 간청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몰인정한 성격을 보였다. 자기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겠다는 유아독존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다.
1993년 2월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같은 해 3월 포철 명예회장직을 박탈당한 것은 물론 수뢰 및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망명아닌 망명을 해야 하는 불운을 겪었다. 문민정부 말기 1997년 경북 포항시 북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정계에 복귀한 뒤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여 총재가 되었다.
이후 김종필과 함께 DJP연합의 일원으로 김대중의 제15대 대통령 선거 당선에 1등 공신 역할을 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에 국무총리로 취임하였으나, 조세회피의 목적인 부동산 명의신탁 의혹으로 궁지에 몰려 재임 4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하였다.
박태준이가 만든 김대중 정권은 햇볕정책이란 명목으로 북한 김정일에게 엄청난 물자를 지원했으며 죽어가던 북한은 기사회생했다.
북한은 김대중 정권의 도움으로 북한 주민의 삶의 개선대신 핵개발에 박차를 가해 남한을 적화통일하려는 야욕을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김대중 정권을 탄생시킨 박태준을 대신해 그 일가는 개인사로 인한 고승덕에 대한 비판을 먼저 하기 전, 김대중 정권을 탄생시킨 아버지의 원죄에 먼저 사과해야 하는 것이 순리였다.
∎고승덕의 전처 박유아,보수우파가 미워하는 고 노무현 대통령 초상화 그려
고승덕은 1984년 수원지방법원 판사로 재직할 때 박태준 전 회장의 둘째 딸인 박유아씨와 결혼했으나 2002년 말 합의 이혼했다.
이화여자대학교 동양미술학과를 졸업한 박씨는 고승덕과 미국에서 유학할 때 미술사와 드로잉을 공부했으며, 고승덕과 사이에 1남1녀 자녀를 뒀다.
2009년 6월9일자 세계일보는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양화가 박유아씨가 제53회 베니스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뉴욕 존 컨템포러리 아트 소속인 박씨는 베네치아의 멀티그래픽 갤러리에서 5∼19일 열리는 전시에서 자신의 주변인 등 한국인 초상을 그린 작품을 선보였다”고 소개하며 “소설가 조정래, 박태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등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고”고 소식을 전했다.
박씨는 노 전 대통령 초상화를 그린 것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친분은 없지만, 한국인으로서 나도 외국에서 서거 소식을 받고 큰 충격에 빠졌다”며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껴 내 주변인은 아니지만 그림을 그리게 됐다”고 말했다.
박씨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면 노 전 대통령 때문에 자살한 많은 저명인사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 역사의식이 결여된 멘트였다.
박씨는 소설가 조정래에 대해 “아버지와 조정래씨는 무척 친하다”며 “다들 두 분이 친하다는 사실에 의아해하지만, 아버지는 알려진 것과 달리 보수적인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해 박태준이가 박정희한테만 충성했지 대한민국에 충성한 것은 아니라고 보여 준 대목이다.
∎ 박태준 죽기 직전 아름다운 재단에 10억원 기부
2012년 12월10일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박태준이는 죽기 직전 집 판 돈 14억5000만원 중 10억원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했다.
기사에 따르면, 박태준의 부인 장옥자 여사는“국가와 민족을 위해 평생을 살겠다는 것이 내 목표요. (동그란 원을 그리며) 이를 위한 내 능력이 이 원만큼인데 오로지 이 원에 전념할 수 있게 나를 좀 보좌해주시오.” 장 여사는 얼떨결에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2000년에는 “지구상에서 내 명의로 된 부동산은 다 없애라”는 박 회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래서 36년간 살았던 북아현동 집을 팔아야 했고, 박 회장은 집 판 돈 14억5000만원 중 10억원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해버렸다.
부부는 이후 전세살이를 하다가 둘째 딸 소유 한남동 맨션에서 살았다.
2010년, 박 회장은 아내에게 미안했던지 이렇게 말했다고 장 여사가 전했다.
“여보, 내가 평생 살다가 남의 집에서 죽는 거 아냐.” 장 여사는 오히려 남편의 이 말 한마디가 늘 마음에 걸렸다.
보다 못한 장남이 지금 장 여사가 기거하고 있는 서울 청운동 낡은 단독주택을 샀다. 하지만 박 회장은 그 집을 자기 명의로 하는 것에 끝끝내 반대했다.
“우리에게 10년 세 주는 걸로 해달라”고 아들에게 부탁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청운동 집으로 이사 가기 전에 지병인 폐부종 증세가 악화돼 생을 마감했다.
∎ 박태준의 맏사위는 거부
고승덕의 딸 이모인 박태준의 첫째딸인 박진아씨는 당시 고희경씨의 글에 “용감한 우리 희경, 사랑해”라는 댓글을, 박 전 회장의 셋째딸인 박근아씨는 “캔디야 ~ I love you”등의 댓글을 달았다. 조카를 응원함으로써 ‘고 후보가 교육감 자격이 없다’는 조카의 글에 동조한 것이다.
고승덕을 비판한 조카 고희경을 응원한 박태준의 첫째딸인 박진아씨는 누구인가. 그는 윤영각 전 삼정KPMG그룹 회장의 부인이다.
지난 1991년 회계법인인 삼정KPMG를 창업한 윤 전 회장은 국제통상 분야 전문가다.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시카고대학MBA, 듀크대학 로스쿨을 졸업한 윤 전 회장은 공인회계사·변호사 자격과 함께 법률학 박사학위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윤영각 전 회장은 작년 8월7일 법무법인 바른 고문으로 취임해 바른에서 경영자문 및 국제통상·M&A 분야 자문을 담당하고 있다.
2012년 12월 삼정KPMG를 떠난 윤 전 회장은 일본 미쓰비시 그룹과 한국 파인스트리트그룹과 절반씩 출자해 자산운영사인 파인스트리트 그룹을 창업했다.
2013년 12월 파인스트리트 그룹은 NH농협금융지주와 함께 우리투자증권 인수전에 뛰어 들었다.
파인스트리트 그룹은 인수전 당시 우리투자증권과 우리자산운영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1조2,500억원대를 제시했다. 이는 NH농협금융지주이 제시한 1조1,600억원대에 비해 높은 가격으로 업계를 놀라게 했다.
최종입찰에서 파인스트리트 그룹은 자금조달의 불확실성에서 NH농협금융지주보다 낮은 점수를 받아 탈락했지만 자금조달력에 많은 언론으로부터 포커스를 받았다.
파인스트리트는 중국투자공사(CIC) 등 외국계 자금을 40% 이내로 유치하고 나머지는 국내 자금으로 채운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윤영각 윤영각 전 삼정KPMG 회장이 이끄는 파인스트리트그룹이 우리투자증권 인수에 실패하자 권성문 KTB투자증권 회장의 계열사인 KTB 프라이빗에쿼티(PE)그룹에 2014년 5월 매각한다.
한편 윤영각 전 회장은 2011년 11월28일 ‘외환은행 되찾기 범국민운동본부’로부터 김석동 금융위원장 등 4명과 함께 론스타가 부당이득을 챙기는 것을 도왔다고 배임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2011년 12월 박태준이가 죽자 언론에서는 “자녀들은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박 명예회장의 병원비와 생활비를 대온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또한 유족 측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 “고인은 본인 명의의 집도 없고 주식도 없다. 재산이 없어 큰딸 집에 얹혀 살았다”고 전했다.
박태준 그는 죽으면서까지 눈가리고 아옹했다. 그들 가족들이 누리고 있는 부의 원천은 어디일까.
푸른한국닷컴, BLUEKOREADOT
전영준 dugsum@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