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닭과 오리 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사회 지도층인 것이다.
[김성춘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메일 내용군대에 간 아들의 잘못을 사과하는 어느 도지사가 스스로를 사회 지도층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도지사가 사회 지도층이냐 하는 것이다. 그간 우리나라에서는 관직이 높거나 대기업 회장이거나 단체장이라면 사회 지도층이라 인정하는 풍조가 있었고. 정부에서도 이따금씩 필요에 따라 이들을 사회 지도층이라고 거명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지도층에서「지도」의 뜻을 모르고 하는 무식의 소리인 것이다.「 지도」에는 당연히 높은 학식과 덕망이 있어 존경하므로 가르침을 받거나 따르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서 사단이 일어나는 것이다. 꼭 지위의 높음과 돈의 많음으로 비례한다면 벼슬을 많이 만드는 고사(故事) 구미속초(狗尾續貂)라도 하면 지도층이 많아 질 것이다.
으레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국회의원. 도지사가 지도층이 아니라「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라는 성경의 말씀처럼 비록 지위가 낮고 가난하지만 솔선수범하는 계급과 계층이 진정한 사회 지도층인 것이다. 혹 이들이「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책무」를 깨닫고 이를 실천한다면 분명 사회 지도층이 맞는 것이다.
사회 지도층은 플라톤의「이상국가」에서 말하는「지혜와 용기와 절제」를 가져야 하고. 중국 송나라의 주희가 사대부의 조건으로 들은「엄격하며, 높은 도덕성」을 생명으로 해야 하며.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은 가치「정의감」으로 충만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군주가 군주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아비가 아비답고. 자식이 자식다운 나라」곧 정명(正名)의 나라에 사회 지도층이 없을 수가 없다.
논어에 보게 되면「군자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데 밝고. 소인은 유리함과 불리함을 따지는데 밝다.」고 하였는데,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국회의원. 도지사 등이 옳고 그름 대신 유리와 불리에 밝다면 그들은 사회 지도층이 아닌 것이다.
오랑캐 나라 금나라의 마지막 황제 애종은 몽고군과 남송군의 연합에 저항하다 전사하고. 동로마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는 오스만 투르크군과 싸우다 전사한다. 그러나 의주로 달아나고 대전으로 달아나는 왕과 대통령을 가진 나라는 사회 지도층이 없다고 볼 것이다.
「소년이여, 대망을 가져라」는 클라크의 말에 고무되어 뜻을 세우거나「30세전에는 나를 위해 살고. 30세 이후는 남을 위해 살겠다.」는 시바이쩌의 서원 같은 것도 없이 어쩌다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국회의원. 도지사가 된 사람을 가진 나라도 사회 지도층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국회의원. 도지사 등이 시정의 잡배들과 같이 돈을 놓고서 진흙탕 싸움을 하는 나라도 사회 지도층이 사라진 나라인 것이다.
주나라 무왕 같이 밤중에도 용모를 닦거나 왕진 같이「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당신이 알고. 내가 안다」며 금덩이를 거절하거나 제갈공명 같이 3대가 전쟁터에서 전사하거나 고경명 같이 3부자가 전사하고 조헌 같이 부자가 전사하며 최영장군 같이 반란군이 산더미 같은 금은보화로 매수해도 고개를 젓는다면 그들은 응당 사회 지도층인 것이다.
「털어 먼지 안날 사람 있느냐?」며 반발하고.「재수 없어 걸렸다.」는 푸념이 있는 나라는 지도층이 없는 나라이다.
사회 지도층이 없는 나라가 우려스러운 것은 쉬 망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온갖 갈등과 대립이 멈추지 않고 탄압과 저항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릇 닭과 오리 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사회 지도층인 것이다.
무릇 기러기나 고니의 뜻을 가지고 살겠다는 사람들이 사회 지도층인 것이다.
푸른한국닷컴, BLUEKOREADOT
김성춘 kimmaeu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