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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종교와 연결된 군대가 장병의 심적 안정과 통일성에 기여한다.
[고성혁 군사전문기자]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서구열강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시찰단을 보냈다. 그것이 바로 1872년 이와쿠라 사절단이다.
사절단에는 젊은 이토 히로부미도 있었다. 일본 근대화의 주역들이 총망라된 이와쿠라 사절단은 서구 열강의 구석구석을 보고 배워와서 근대 일본을 만들었는데,
그러나 이토 히로부미가 본 것은 좀 색달랐다. 그것은 종교의 힘이란 것을 알게되었다.
전쟁터로 나가는 군인들이 군목의 지도하에 십자가 밑에서 경건하게 기도하는 모습, 그리고 전장터에서 죽은 병사도 목사의 기도와 함께 장례치루는 장면이 이토 히로부미의 눈에는 색다르게 보였다.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본 이토 히로부미. 종교와 연결된 군대는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이토 히로부미는 보았다.
일본은 원래 통일된 종교가 없는 나라다. 일본 역시 동아시아 문화권이기 때문에 사회의 기저에는 불교가 바탕이 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교가 정치나 군대와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
불교를 제외하면 일본의 신도가 있는데 이것은 매우 다신교적이라서 종교라고 하기엔 좀 뭔가 통일된 계율이 없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전통적 신도를 천황과 연결시켜 일본군에 적용했다. 러일전쟁에서 전사한 장병은 일본 신도방식으로 장례를 치루었다. 전사한 장병의 위폐는 일본 천황가의 신사인 야스쿠니에 모셨다.
종교적 차원에서 서구의 군대가 기독교적 관련성에서 하나님에게 자신의 운명을 위탁하는 것이 일본에선 천황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치환되었다.
십자군 전쟁부터 현재의 탈레반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신의 이름으로 전투를 했다면 근대 일본은 천황의 이름으로 전쟁을 한 것이다.
군대와 종교가 너무 밀착하면 탈레반 같은 맹신주의자가 되는 것처럼 일본제국주의 군대는 신의 이름대신 천황이라는 이름으로 맹종했다. 그것이 바로 일본 군국주의였다.
그러나 종교와 완전 무관한 군대보다는 어느정도 종교와 연결된 군대가 장병의 심적 안정과 통일성에 기여한다. 이토 히로부미는 바로 그것을 봤다.
그러데 요즘 미군은 그런 종교의 중요성을 오히려 금기시한다는 점이다.
매우 우려스럽다. 소위 PC주의 때문인데, 청교도적인 미국은 아니더라도 지배적인 종교가 있는 것은 없는 것보다 낫다.
극한 상황에서 기도할 신조차 부정된다면 그것이 지옥이지 어디가 지옥이겠나?
공산주의 중공군이나 북한 인민군이 결코 자유주의 국가 미국이나 대한민국을 이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기도할 수 있는 신이 존재하는 사회와 그러지 못한 사회의 비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고성혁 군사전문기자]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서구열강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시찰단을 보냈다. 그것이 바로 1872년 이와쿠라 사절단이다.
사절단에는 젊은 이토 히로부미도 있었다. 일본 근대화의 주역들이 총망라된 이와쿠라 사절단은 서구 열강의 구석구석을 보고 배워와서 근대 일본을 만들었는데,
그러나 이토 히로부미가 본 것은 좀 색달랐다. 그것은 종교의 힘이란 것을 알게되었다.
전쟁터로 나가는 군인들이 군목의 지도하에 십자가 밑에서 경건하게 기도하는 모습, 그리고 전장터에서 죽은 병사도 목사의 기도와 함께 장례치루는 장면이 이토 히로부미의 눈에는 색다르게 보였다.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본 이토 히로부미. 종교와 연결된 군대는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이토 히로부미는 보았다.
일본은 원래 통일된 종교가 없는 나라다. 일본 역시 동아시아 문화권이기 때문에 사회의 기저에는 불교가 바탕이 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교가 정치나 군대와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
불교를 제외하면 일본의 신도가 있는데 이것은 매우 다신교적이라서 종교라고 하기엔 좀 뭔가 통일된 계율이 없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전통적 신도를 천황과 연결시켜 일본군에 적용했다. 러일전쟁에서 전사한 장병은 일본 신도방식으로 장례를 치루었다. 전사한 장병의 위폐는 일본 천황가의 신사인 야스쿠니에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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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 제31연대가 6.25 전쟁 중 군종목사 인도 아래 야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모습. 사진@온라인커뮤니티 |
십자군 전쟁부터 현재의 탈레반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신의 이름으로 전투를 했다면 근대 일본은 천황의 이름으로 전쟁을 한 것이다.
군대와 종교가 너무 밀착하면 탈레반 같은 맹신주의자가 되는 것처럼 일본제국주의 군대는 신의 이름대신 천황이라는 이름으로 맹종했다. 그것이 바로 일본 군국주의였다.
그러나 종교와 완전 무관한 군대보다는 어느정도 종교와 연결된 군대가 장병의 심적 안정과 통일성에 기여한다. 이토 히로부미는 바로 그것을 봤다.
그러데 요즘 미군은 그런 종교의 중요성을 오히려 금기시한다는 점이다.
매우 우려스럽다. 소위 PC주의 때문인데, 청교도적인 미국은 아니더라도 지배적인 종교가 있는 것은 없는 것보다 낫다.
극한 상황에서 기도할 신조차 부정된다면 그것이 지옥이지 어디가 지옥이겠나?
공산주의 중공군이나 북한 인민군이 결코 자유주의 국가 미국이나 대한민국을 이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기도할 수 있는 신이 존재하는 사회와 그러지 못한 사회의 비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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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혁 sdkoh40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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