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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혁을 프랑스 국왕 앙리 4세에 비교하는 건 명예훼손이다.

기사승인 2026.03.27  17: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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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3년 7월 25일 생드니 대성당에서 앙리 4세가 가톨릭으로 원복하는 모습. 출처 : 기독교개혁신보
앙리 4세는 개종할 때 누구처럼 대변인 통하지 않고 직접 결단했다.
 
[최성환 빅픽처 대표] 유럽의 30년 종교전쟁(1618~1648) 당시 종교와 진영이 반대된 국가가 프랑스였다. 구교 국가인데 신교 국가들 편에서 싸웠다. 스페인과 오스트리아 등을 보유한 합스부르크 가문의 힘을 빼놓기 위한 계산이었고 그 결실을 이뤘다. 태양왕 루이 14세 때 일이다.
 
루이 14세의 조부 앙리 4세는 부르봉 왕조의 초대 국왕이다. 30년 전쟁 이전에 프랑스 내전이었던 위그노 전쟁에서 위그노(프랑스 칼뱅파 신교도)들의 리더로 가톨릭 동맹(신성동맹)을 상대로 승리하여 프랑스 내 신교도 세력의 주도권을 점했다.
 
발루아-앙굴렘 왕조의 마지막 국왕 앙리 3세를 보호하며 그의 뒤를 물려받아 국왕이 된 앙리 4세는 파리 주변 여러 도시를 함락시켰지만, 정작 파리가 이교도 의 지배는 못 받겠다고 결사항전으로 버티면서 함락시키지 못한다.
 
결국 1593년 7월 25일 지금의 파리 북부 교외인 생드니 대성당에서 가톨릭으로 원복한다. 그러자 스페인의 지원을 받는 일부 도시를 제외한 대다수 가톨릭 도시들이 앙리 4세에 복종한다. 개종 당시 앙리 4세의 명언은 파리는 미사를 드릴 가치가 있다(Paris vaut bien une messe). 한편 개신교는 낭트 칙령으로 신교도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다.
 
심규진 스페인 IE대 교수가 비유한 이유로는 크게 2가지로 추측된다.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는 1830년 7월 혁명으로 샤를 10세가 퇴위당한 이후 명맥이 끊겼지만,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부르봉에서 분가한 보르본 왕조는 현재도 스페인에서 유지되고 있다.
 
다른 추측으로는 앙리 4세는 프랑스 왕으로 부르봉 왕조를 세우기 전 여왕이었던 모친의 영토를 물려받아 나바라 국왕이었다. 나바라는 지금의 팜플로냐 등 도시를 보유한 바스크인이 거주하는 자치주이다. 하지만 북쪽의 바스크주와 달리 독립에 회의적이다. 중국으로 빗대면 중앙 정부인 카스티야 지역 입장에서 바스크가 독립하지 못한 외몽골이면 나바라는 내몽골이 아닐까?
 
따라서 프랑스 부르봉 왕조 초대 왕의 배경이 스페인이었고, 분가한 이후 본가는 망했지만 분가한 보르본은 여전히 왕조를 유지하고 있으니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띄우기에 본인의 배경지식으로 앙리 4세를 적합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지난 3월 17일 인싸it에 올린 [심규진 칼럼] “파리는 미사를 드릴 가치가 있다”의 글 내용을 보자.
 
첫 문단부터 ‘지도자는 그 순간 두 가지 선택 앞에 선다. 끝까지 버티다 몰락하느냐, 아니면 현실을 인정하고 살아남느냐.’ 의문이다. 다음 글에서 심규진 교수는 후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필자 생각으로는 후자는 아니고 전자에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장동혁 대표의 행태를 보니까 전자인지 후자인지 알 수가 없다.
 
장동혁 대표는 본인은 회피하거나 대변인 통해서 의견을 내기 때문에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 앙리 4세처럼 자기 스스로 개종하든 동맹을 맺든 큰 결단한 걸 본 적이 없다.
 
다음으로 심규진 교수는 ‘그리고 집권 이후 그는 프랑스 종교 전쟁을 종식시키는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내린다. 낭트 칙령이다. 낭트 칙령은 주류 가톨릭 세력에 의해 박해받던 위그노에게 종교적 자유와 정치적 권리를 인정한 조치였다. 프랑스 역사상 처음으로 서로 적대하던 두 종교 세력이 일정한 공존의 질서를 인정한 정치적 타협이었다.’ 위그노 전쟁을 종식시키고 가톨릭으로 원복했지만 직전 종교였던 신교의 신앙 허용을 허락하는 낭트 칙령 발표로 두 종교의 공존 질서를 이뤘다며 국민의힘 현 상황에 빗대기 시작한다.
 
필자는 여기서 궁금해진다. 심규진 교수의 논리라면 106명의 절윤 선언한 국회의원들의 입장에 이름을 올린 것이 개종이라면, 기존에 한동훈 이외에 배현진 의원 제명 시도는 왜 일어났던 것인가?
 
원외 당협위원장 25명 징계 얘기는 왜 나온 것인가? 이건 미사를 드려도 된다며 항복을 받아낸 후 학살하는 짓이다. 앙리 4세가 아니라 공산당이나 하는 짓이다. 한동훈 제명으로 끝냈어야 할 문제다.
 
‘한쪽에는 원내 권력 구조가 있다. 106명의 의원이 동시에 압박하는 상황에서 당 대표가 이를 정면으로 거부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는 당원들이 있다.’ 망상이다. 마치 국회의원들과 당원 대다수 여론이 정반대의 대립 관계인 것처럼 가정하는 게 코미디이다.
 
애초에 국회의원들이 당원 대다수와 대립하는 게 말이 안 된다. 설령 당원 대다수 의견을 무시함에도 국회의원들이 신경 쓰지 않는다면 그건 당원 대다수가 문제다. 심규진 교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당원들이 당원 대다수라고 착각하고 함부로 재단하지 마시라.
 
‘최근 열린 ‘당 대표를 지키다’ 집회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당 대표의 연임을 지지하는 집회가 열린 것은 사실상 전례가 없다.’ 전례가 없긴 하다. 우선 당 대표 지지하는 집회 자체가 개그 아닌가? 집회 참석자 수 찍힌 게 인터넷에서 돌아서 안 하느니 못 한 집회가 됐다.
 
구독자 수십만에서 백만 넘는 여러 유튜버들이 모여서 홍보했는데 주말 윤어게인 집회보다 적어서 좌파, 한동훈 지지자, 윤 어게인 등 거의 모든 세력에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조롱이 난무했다. ‘장동혁 지지자들이 겨우 이 정도구나.’ 견적만 보여줘서 우습게 됐다.
 
‘지금 윤석열 지지층 상당수는 정치적 낭인 의식 속에 있다.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났다는 상실감, 정치적으로 소외됐다는 감정이 강하다.’ 지지하는 정치인을 지지층 본인들이 바꾸면 그만이다. 스스로 아무것도 못 하는 장애인도 아니고 탄핵으로 끝난 사람한테 미련 갖는 것을 동정하고 이해 해줘야 할 일인가? 피도 안 섞인 남남인데 미련 버리고 좋아하는 연예인 바꾸듯이 지지하는 정치인 알아서 찾아 바꾸면 그만이다.
 
‘샌드위치 리더십, 코너에 몰린 당대표라는 이미지가 오히려 정서적 연대의 기반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앙리 4세 역시 비슷했다.’ 앙리 4세가 언제 구교 신교 양쪽 모두로부터 샌드위치가 된 적이 있었나?
 
앙리 4세는 자신의 결혼식 날 가톨릭 세력의 대학살 사건과 당시 국왕이었던 샤를 7세의 협박으로 구금 및 프로테스탄트에서 카톨릭으로 강제 원복한 적이 있었다. 그 후 3년 뒤에 탈출하여 본거지로 돌아와서 개신교로 개종하였는데 가톨릭은 몰라도 칼뱅파 내에서 앙리 4세를 위협하는 샌드위치 상황은 없었다. 스스로 윤어게인 부정선거 절윤에 대해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장동혁과 달리 앙리 4세는 적어도 노선은 분명했다.
 
‘원내 권력과 장외 민심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황에서 그는 한쪽에 완전히 투항하지도 않았고, 다른 한쪽과 완전히 결별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양쪽의 요구 사이에서 최소한의 접점을 찾는 길을 선택했다.’ 당 대표가 일부라도 투항한 것 자체가 비판받아야 할 것 아닌가? 완전히 결별하지 않았기에 윤어게인 부정선거 프레임을 뒤집어쓴 것 아닌가?
 
심규진 교수는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을 리더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서 띄워주는 건가?
 
‘그 가운데서 분명한 사실 하나가 있다. 장동혁은 지금 당원들의 지지를 받는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정당의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는데 당원들의 지지를 받는 게 사실이면 그 정당의 당원들이 등신이다. 장동혁 대표 지지하는 집회 인원수가 제명당한 한동훈 지지하는 집회보다 인원수가 적은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건가? 당원들 지지받으면 배현진 제명 시도하듯이 오세훈도 제명 시도해 보라.
 
‘그래서 질문은 이것이다. 장동혁의 절윤 선언은 단순한 정치적 후퇴일까, 아니면 훗날 보수 정치 내부의 공존 질서를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낭트 칙령’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까.’ 역시 마지막 결론은 장동혁 대표 지지자답게 스스로 답을 주장하지 않고 객관식 질문으로 마무리한다.
 
그냥 ‘정치적 후퇴다’ 아니면 ‘공존의 새로운 출발점이다’라고 주장을 하면 얼마나 명확하고 짜증이 나지 않고 좋은가?
 
장동혁 대표가 언제 낭트 칙령같은 거 발표한 적이 있었나? 106명 국회의원과 선언했을 때조차 한마디도 안 하고, 입 꾹 다물고 대변인 통해서 의견 내고 피하는데 무슨 칙령을 발표한단 말인가?
 
낭트 칙령은 왕이 직접 내린 칙령이지만, 그 당시 장동혁은 국회의원들의 긴급 의원 총회에서 의원들이 만든 선언문에 서명한 게 다 아닌가?
 
칙령을 하사한 국왕과 선언을 자기 입으로 말하지 않는 대표와 동일선상에서 비교한 것은 스페인에서 축구 선수 다비드 비야(DAVID VILLA)를 데이비드 빌라라고 읽는 것보다 못한 짓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프랑스 앙리 4세의 공통점이 하나 있긴 하다.
 
앙리 4세는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프랑스 사회 안정과 국력 강화로 전성기 시작을 이끌었지만, 가톨릭 광신도에게 암살당했다. 장동혁 대표는 당내 안정과 정당 지지율을 올리지 못했지만, 전당대회 때 자신을 지지했던 윤어게인에게 욕먹고 있다.
 

푸른한국닷컴, BLUEKOREADOT

최성환 gogodun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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