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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편집@온라인검색사진 | ||
전여옥 의원은 왜 박근혜를 지지하지 않았을까라 自問에 ‘대통령감이 아닌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No"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自答했다.
전 의원은 “내가 당에 들어와 지난 3년 동안 지켜봐 왔다. 가까이서 2년을 지켜보았다. 그래서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대통령감은 아니라는 것을”이라며, “나라를 위해서 그녀가 과연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나의 답은 이미 정해졌다. ‘아니다. No’였다”라고 썼다.
전여옥 의원은 박근혜의 원칙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박근혜는 2004년 3월23일 임시전당대회에서 “한나라당은 부정부패 연루자를 보호하지 않겠으며, 기소되면 당원 자격을 정지시키고 유죄가 확정되면 영구 제명하겠으며 방탄국회는 결코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부정부패로 유죄가 확정돼 2년반동안이나 콩밥을 먹은 사람을 한나라당을 쇄신해야 할 비대위원으로 임명했다”며 박근혜의 원칙은 무원칙이라고 비판했다.
전여옥 의원의 박근혜 비판에 대해 박 위원장 지지자들은 “비인간성,비도덕성,비상식의 정도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비례대표 초선의원이었던 전여옥이 오늘날 재선의원이 된 것도 알고 보면 박근혜의 후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박 위원장의 지지자들의 생각은 잘못됐다.
전 의원은 박근혜를 배신한 ‘배반의 장미’가 아니다. 동고동락하는 상하관계도 아니다. 단지 정치상황에 따라 같이 간 동반자였을 뿐이다.
전여옥 의원은 2008년 10월16일 자기 홈피를 통해 2007년 경선 당시에 박근혜 후보가 아닌 이명박을 택한 것은“고통스러운 선택이 이 나라와 국민을 위한 올바른 길이었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논객들은 정치인이 “소신을 팔아먹고 망하는 꼴은 봤어도 자진해서 제 무덤을 파는 경우는 못 봤다. 오래간만에 보는 걸작 궤변이고 자기 합리화의 극치다.”라고 비판했다.
그 논객의 항변엔 전여옥대한 분노가 서려있다. 만약 전여옥이가 박근혜 전 대표를 위해 경선 시 몸을 던져 헌신했다면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배어있다.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한 사람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사람은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만나는 세상사의 이치를 안다면 굳이 그렇게 비판할 필요도 없고 따질 필요도 없다.
전여옥 의원은 박근혜 대표에 의해 대변인에 임명된 것이 아니다.
전직 KBS 기자 출신인 칼럼니스트 전여옥씨는 2004년 3월 16일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대변인 활동을 시작했다. 전여옥씨는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로 당선되었다.
17대 총선 기간 중 그의 인기는 박 전 대표를 능가했다. 그의 말 한마디에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짓눌린 마음을 그의 시원한 말 한마디에 풀었다.
총선이 끝나고 당직 개편시 전 의원은 대변인 직을 사퇴했다. 그러나 당시 박 대표는 대변인 직을 계속 맡아달라고 간청하여 할 수 없이 전 의원은 대변인 직을 계속 수행했다.
여기서 박 위원장 지지자들이 배신운운 비례대표 운운 재선운운 하는 것은 넌센스다. 비례대표 맡을 때도 당시 박 대표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고 2008년 공천에서는 더더욱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도 박 전 대표를 대신한 제주 유세 등 그의 말 한마디는 금과옥조였다.
전 의원의 역할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2004년 총선 후 열린우리당의 압승으로 여당이 기고만장한 행동을 할 때 국가정체성 수호를 위해 몸으로 막아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다수 의원들이 숨 직이고 있을 때 심지어는 박 전대표가 김대중의 6.15 남북정상회담이 일리가 있다고 말 할 때 그는 북한을 악랄하게 비판했다.
전여옥 의원은 좌파들의 정체성 파괴를 저지하기 2006년 9월2일 오후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전시작전통제권 단독행사 유보' 촉구 범국민 안보 궐기대회에 참석을 위해 현장으로 갔다.
2005년 노무현 정권이 국가보안법 폐지등 정체성 파괴를 위해 극렬하게 날 뛸 때 박근혜는 2005년 11월 14일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을 찾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예방히며 전통차를 선물했다.
누가 더 진정한 애국자이며 국가정체성 수호를 위해 노력했는지 극렬하게 대비되는 장면이다.
배신의 원조는 박근혜가 먼저
박근혜 위원장을 정치권에 입문시킨 것은 이회창 전 총재다. 98년 달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그녀를 픽업하여 당선시켜 초선의원임에도 부총재 등의 자리를 주며 과분한 대접을 하였다.
그러나 정치입문 4년 만에 자기 뜻대로 안된다고 탈당하여 새로운 정당을 만들었다.
2007년 대선에 이회창이가 박근혜 전 대표 집을 밤늦게 3번이나 찾아 갔어도 문전박대 한 사람이다. 경선 시 본인을 안도와 주었다고 앙칼진 보복을 한 것이다.
배신운운을 떠나 차 한잔 대접 안하는 인간미가 없는 정치인이라는 것을 보여준 좋은 사례다.
전여옥은 원래 박근혜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아래 글은 <'포스트 최병렬'이 박근혜라니!>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2004년 2월 24일자 전여옥 칼럼이다.
요약하면..."나는 박근혜라는 여성 정치인에 대해 회의적이다. 박근혜의원은 스스로 벌고 쌓은 정치적 자산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정치적 유산’의 상속자로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정치적 경력이나 정치활동을 볼 때 그는 여전히 박정희의 그늘에 묻혀 있다. 박정희는 죽었지만 ‘정치적 왕조’로서 딸 박근혜를 통해 일종의 ‘유훈정치’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그럼에도 박근혜 위원장은 전여옥 의원을 대변인에 중용했다. 비판적인 줄 알면서중요했기에 배신운운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그의 실천력은 한나라당 어느 의원보다도 제일 으뜸입니다. 대중을 사로잡는 웅변력은 한나라당 내 국회의원 중 최고이다.
박근혜는 수첩을 갖고 다니지만 전여옥이는 말을 갖고 다닌다. 따라서 실천, 원칙 운운하며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
전여옥 의원은 되레 의리가 있다. 현역 정치인 중 박근혜 위원장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전 의원 밖에 없다. 대변인 시절 박 위원장 집을 유일하게 드나들던 사람이다.
아마 박 위원장의 비하인드를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 의원은 정치적이야기만 빼 놓고 사적인 이야기는 절대 안한다. 참으로 입이 무겁다.
되레 박근혜 위원장 및 그 지지자들은 전여옥 의원의 신중한 처세에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 쓴약이 되레 양약이 된다는 것을 알면 대권가도가 쉬워진다.
푸른한국닷컴, BLUEKOREADOT
전영준 news@bluekoreado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