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eople]세종시 修正案(수정안)통과를 위해 水正果(수정과)를 선물한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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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는 ‘세종시 수정안 촉구 시위’ 및 ‘사대강 성공 기원 시위’ 등 국가 시책에 관한 옹호 시위도 많이 했다. 2008년 11월3일에는 제주 마라도에서 김정일 北국방위원장의 답방을 요구하는 피켓시위를 했다.
그의 시위는 특이하다. 일반 시민단체 시위는 수십명씩 모여 하는 데 그는 1인 시위를 고집한다. 보수단체 1인 시위는 그가 원조다. 또한 던지는 메시지가 확실하고 간결하다.
그는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善(선)과 惡(악)을 바탕으로 애국활동에만 충실할 따름이다.
활빈단 단장 홍정식하면 돈키호테로 생각한다. 그는 김대중 정권 출범이 후 보수의 시민단체들이 존재도 없을 때 그는 전국을 혼자 다니며 부정부패와 국가정체성수호를 위해 몸을 던졌다.
활빈단은 빈자에 활력을 주는 단체라는 뜻으로 지난 98년 4월 결성됐다. 그는 “홍길동의 활빈당처럼 악한 무리들에게 활을 쏘는 단체라는 의미로 해석해도 무방하다.”고 했다.
집시법과 관련된 전과만 해도 수없이 많다. 집시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활빈단 홍정식 단장은 항소심 재판에서 "벌금이 확정되면 차라리 노역장을 살겠다"고 밝혀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08년 2월15일엔 노무현 전 대통령 봉하마을 생가를 방문해 방명록에다 "처절한 반성으로 자서전도 쓰시고 정국혼란 야기하는 일체의 말장난 중단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서명하기도 했다.
2009년 1월 5일당시 민주노동당 대표이던 강기갑 의원이 분노해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을 사무실로 찾아가 탁자 위로 뛰어오르며 ‘공중부양’을 하며 거세게 항의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활빈단 홍정식 단장은 강기갑 의원에게 누가 ‘공중부양’을 잘하는 지 시합을 하자고 제안하며 실제 시연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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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편집@푸른한국닷컴 | ||
진보좌파신문 ‘오마이뉴스’가 2001년에 단독 인터뷰 할 정도로 유명인사다. 즉 좌파들도 그의 애국심과 진정성을 의심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배울 만큼 배운 지식인요, 김포세관과 인천세관 등지에서 25년 동안 근무한 관세공무원이었으며. 김밥장사, 호텔 웨이터, 신문배달, 밤무대 가수 등 안해 본 게 거의 없으며, 아이디어와 꾀도 많다. 보수집회에서 나온 퍼포먼스도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들이 많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그가 관세청에서 서기로 있을 때 최상급자인 청장한테 찾아가서 ‘나도 서기이니 북한의 김정일 서기와 한번 만나겠다.’고 간청을 했다고 한다.
당시 청장은 ‘서기도 나름이다 너는 김정일 서기의 백분의 일도 못 하다. 쓸데없는 짓거리 하지마라.’며 꾸중을 들었던 일화가 있다.
그가 퇴임한 게 된 것도 다른 사람들과도 특이하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이후 구조조정 대상 0순위에 오른 것 같아 과감히 사표를 내 던지고 보수우익 활동과 부정부패 척결 운동을 혼자 해 왔다.
99년 3월 서울세관 파주감시소장으로 근무할 당시 윤관 대법원장과 김태정 검찰총장에게 때밀이 타월 3000장을 보낸 사건이후 공직을 떠났다.
비리 판·검사에 나눠줘 건국 이래 법조계의 묶은 때를 벗기라는 취지였는데 이로 인해 상사들의 분위기가 험악해져 버티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 아들에 그 어머니라고 했다, 홍 단장의 나이는 60세다. 그의 어머니는 83세다. 어머니는 홍 단장보다 더 애국적분이라 한다. 지금도 돋보기로 신문사설을 읽으시며 정치평론을 하시며 나라걱정을 하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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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이 갖고 온 재료를 갖고 80이 넘은 모친은 환갑이 다된 아들을 위해 맛있는 수정과를 만들어 주셨다. 그날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 수정과를 맛있게 마시며 애국의 의지를 불태웠다고 한다. 홍 단장은 그 행사에 참여하는 분들을 위해 버스대여료를 기부했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일은 고난한 일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되레 미친 놈 소리 듣는다. 권력은 아쉬울 땐 도와달라고 사정을 하지만 소기의 성취를 이루면 잊어버린다. 되래 꼴통들이라고 손가락질 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10년 이상을 비가 오나 눈이오나 활동을 해왔다. 체제전복 세력들과 몸으로 부딪치며, 각종이유로 고발을 당하여 전과자가 되기도 했다. 가장의 역할도 못한다고 가족들의 핀잔을 듣고 무능한 남편, 아빠로 전락되기도 하였다.
홍정식 단장의 이야기 ‘ 다른 것은 다 참을 수 있어도 자식들이 나를 애처롭게 쳐다 볼 때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생각하면 가장 힘들었다.’고 실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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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준 news@bluekoreado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