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ad42
default_setNet1_2
ad43
ad44

[23] 조선시대의 과학수사(1)

기사승인 2015.07.06  21:26:30

공유
default_news_ad1
ad35

   
▲ 사진@mbc
범인을 잡는 방법은 과거나 현재나 대동소이하다.

[이종호 과학국가박사]살인사건을 비롯한 범행이 일어나면 수사관들은 사건 정황을 그려보며 피살자가 어떻게 살해되었는가를 검증한다. 다음에는 범인이 어떻게 살해했는가를 파악한 후 범인이 누구인가를 추정한다. 사건 현장에 남겨진 자료만으로 범인을 찾을 수 없다면 추리를 통해 사실 가능성이 높은 이론, 즉 가설을 세운다. 그런 다음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만약 그 가설이 사실이라면 범인은 누구일까”

범행 당시를 설명하는 가정을 올바로 세우면 범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반대로 사건 정황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면 오히려 범인이 만들어놓은 함정에 빠져 사건은 미궁에 빠지기 마련이다.

추리를 통한 과학수사의 원조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론이 있지만 유럽에서는 대부분 본명이 아서 이그나티우스 코난 도일(Arthur Ignatitus Conan Doyle, 1859∼1930)인 스코틀랜드의 코난 도일을 꼽는다.

그런데 그는 원래 작가 출신이 아니다. 1882년 의사자격증을 딴 23살의 도일은 포츠머스 교외의 사우스 시에 안과병원을 열었다. 그러나 환자가 전혀 없으므로 소일거리로 당시에 큰 화제를 일으킨 메리 셀레스테 호의 의문스런 사건을 소재로 소설을 써서 1884년 『콘힐』이라는 잡지에 「J. 하버쿠크 젭슨의 증언」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메리 셀레스테호가 버뮤다삼각지대를 통과하였기 때문에 남다른 주목을 받았지만 소설 자체는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는 허구의 내용을 토대로 전개한 것이다.

그런데 그의 소설이 유명해진 것은 메리 셀레스테 사건을 조사했던 솔리 플루드가 정확하지 않은 도일의 책에 분개하여 J. 하버쿠크 젭슨은 사기꾼이며 거질말쟁이라고 중앙뉴스통신사로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와 같은 반발은 오히려 도일의 명성을 높여 주는 결과를 낳았고 『콘힐』에서는 그때까지 한 편에 3기니 하던 도일의 원고료를 30기니로 올려 주었다고 한다. 여하튼 환자가 없어 소일거리를 찾던 도일은 다소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전문적인 작가로 나서며 불후의 인물을 탄생시킨다. 추리소설계에서 최고의 탐정으로 남게 된 ‘셜록 홈즈’이다.

셜록 홈즈는 범인 추적을 정확히 과학적으로 하는 탐정이다. 당시에는 과학적인 범죄수사라는 것이 없었던 때였는데 코난 도일은 의사로서의 전문 지식을 십분 발휘하여 셜록 홈즈를 통해 범인을 찾아나가는 것이 독자들의 구미에 맞아 공전의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

유교를 국시로 삼은 조선시대라고 해서 범죄가 생기지 않을 리 없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유럽에서는 셜록 홈즈가 등장하기 전까지 과학적인 수사 기법이 사용되지 않았지만 조선에서의 과학수사는 매우 이른 시기에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과학수사의 모범>

인간은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동물이라는 말처럼 세계 곳곳에서 범죄가 일어난다. 범인은 자신의 범죄가 발각되지 않기 위해 갖가지 묘안을 강구하며 설사 혐의자로 체포되어도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필사의 거짓말을 펼친다. 반면에 수사관들은 범인들의 거짓말을 밝혀내기 위해 총력을 펼친다.

이때 범인을 꼼짝 못하게 하는 방법은 과학수사이다. 사건을 조사하는 수사관의 역할은 거짓말을 일삼는 혐의자가 꼼짝 할 수 없도록 철저한 증거를 확보한다. 어떠한 방법으로 증거를 확보하느냐가 추리물이 재미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관건이라고 볼 수 있다.

2007년 TV에 재등장한 조선판 CSI 과학수사대 드라마 「별순검」은 『무원록』, 『증수무원록』 등 확실한 참고서를 바탕으로 수사관 별순검이 지휘하는 과학수사 과정을 그린 것이다. 별순검 자체는 조선 말기 짧은 기간 동안 존재했던 기구이다. 조선시대의 특수경찰을 소재로 한 「별순검」은 기존 사극이 주로 연애와 역사 이야기를 주로 하는데 반해 조선시대에도 과학적인 수사기법을 동원하여 범인을 몰아가는 점 등이 색다르다는 평을 받았다.

드라마 「별순검」에서 시청자들을 가장 놀라게 하는 것은 검험(檢驗, 현장에 나가 시체나 상처를 확인하는 일)이다. 검험은 미국 수사극 시리즈물 「CSI 과학 수사대」가 가장 중요시하는 사건 해결의 핵심 요소인데 시청자들은 조선시대에 정말로 조선시대에 그 정도로 과학적인 검험이 가능했는지 의아해했지만 그건 사실이다.

국내에서 높은 시청율을 보인 미국 TV 드라마 「CSI, 과학수사대」에는 사건 현장에서 혈흔을 찾아내기 위해 분무기로 무언가를 뿌리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현대 수사에서 혈흔 확보의 공식처럼 돼 있는 이 장면에 등장하는 용액은 질소화합물인 루미놀(Luminol)과 과산화수소수의 혼합액이다.

혈흔을 찾고자 하는 곳에 이 혼합액을 뿌리면 과산화수소수가 혈흔에 남아 있는 헤민(Hemin)이라는 성분과 작용해 강렬한 화학 발광(發光)을 한다. 어두운 사건 현장에서 이 용액을 뿌리면 청백색의 형광이 나타나 핏자국을 쉽게 판별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때때로 혈흔 이외의 물체에서도 발광하는 경우가 있어서 추가 검증이 필요하지만 조작이 간편하고 반응이 확실하다는 점 때문에 교통사고 등 범위가 넓은 사건 현장에서는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조선시대에 루미놀은 없었지만 이에 못지않은 혈흔 찾는 법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면 놀랄 것이다. 범인을 찾을 때 가장 어려운 것은 범인의 살해도구 은익하거나 훼손하는 경우이다. 그런데 수사록에 시간이 많이 지나 살인한 흉기를 판별하기 어려우면 숯불로 빨갛게 달구어 고초로 씻으면 피의 흔적이 보인다고 적었다.

KBS-TV <역사스페셜> 팀은 「조선 CSI 누가 황씨 부인을 죽였나」에서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이강봉 박사팀과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검증했다. 이 박사는 수사록에 적혀 있는 고초액 즉 초산만 사용하여 일주일 동안이나 계속 실험했음에도 혈액 흔적을 발견하는데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많은 실험을 거쳐 고초액에 티오시안나트륨을 혼합시켰더니 철과 반응하여 혈액 흔적이 나타남을 확인했다. 조선시대 수사록에는 단순하게 고초액이라고만 적었지만 고초액에 철과 반응하는 성분을 넣었다는 것은 이 당시 수사관들이 수많은 실험을 거쳐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루미놀이 없던 조선시대에 고농도의 초로 혈흔을 발견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과학수사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해 그런 사실을 사전에 숙지했다는 것은 당대의 수사진에도 과학적 사고로 수사에 임한 전문가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흔을 변질시키지는 않았다 해도 사체가 외부에 노출되어 시일이 오래 경과되면 시반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 경우 법물(法物)을 사용한 과학수사가 더욱 빛을 발한다. 법물이란 검시에 활용되는 보조도구 및 수단들로 널리 알려진 것은 100퍼센트 순도의 은비녀이다. 그밖에 술지게미(糟), 초(醋), 파, 소금, 매실과육은 물론 창출(蒼朮, 당삽주의 뿌리). 조각 등의 약재도 사용되었다. 지게미, 초, 파, 매실과육 등은 사체의 상흔을 드러내는 데 사용되었고 창출, 조각은 시체가 놓인 곳의 악취를 제거하는 용도로 활용되었다.

조선시대의 경우 독사(毒死)의 경우, 전적으로 은비녀에 의지했는데 이 점은 조선 특유의 수사기법으로 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비상으로 인명을 해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비상으로 살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비상은 예로부터 죄인에게 내린 사약에 많이 쓰인 독극물로 무색무취의 백색 분말로 물에 잘 녹는다. 이는 자연 상태의 비소를 원료로 제조된다.

지구상의 원소 중 50번째로 많은 비소는 오래전부터 인류가 사용해 온 물질이다. 자연 상태의 비소는 독이 없으나 여러 가지 비소산화물은 대개 독성을 띤다. 그중 아비산(As2O3)이 가장 강력한 독성을 발휘하는데, 이것이 비상이다. 그런데 은이 비상의 황과 결합하면 검게 변한다. 이러한 색의 변화로 조선에서 많이 사용되던 비상이 독살에 사용됐는지를 판별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조사관 및 검시관은 아전들을 대동하고 조사를 벌인다. 시체가 놓인 장소에 도착하면 우선 시체를 중심으로 사방 규격과 시체가 놓인 방향 등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집중적으로 관찰한다. 사건 장소에 대한 조사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시체를 살핀다. 먼저 겉으로 드러난 안색이나 상흔 등에 주목하면서 시체의 옷을 벗기고 상태를 꼼꼼하게 기록하였는데, 이 기록은 조선시대 사람들의 복장 형태를 알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시체의 옷을 모두 벗기고 최종적으로 알몸이 된 시신의 상태를 기록한 것이 시장(屍帳)으로 검안 기록에 덧붙이거나 별도로 묶어서 보고했다.

조선시대 과학 수사가 얼마나 높은 수준에서 이루어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마디로 조선시대 수사관들은 단지 죽음을 분류하고 그 원인을 알아내는 소극적인 방법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살해의 증거를 통해 수사를 진행한 것이다.

게다가 검시 전과 후에 피고 및 관련된 가족, 이웃 등에게 확인시켜 서명을 하도록 하고, 초검관(初檢官)은 복검할 때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등, 검시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행지침과 절차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살인 사건처럼 인명이 관련된 사건의 경우 함부로 조사를 끝내거나 소홀히 다루지 않았다. 인정(仁政)이 통치철학이었던 조선에서는 원통한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의문이나 의혹을 남김없이 풀어야 했다. 또한 증거 확보를 통한 과학적인 조사는 물론 법 집행에 있어서도 현대에 못지않게 인권을 중시했다.

조선시대의 검시제도는 한 마디로 복검제(覆檢制)로 설명할 수 있다. 복검제란 원칙적으로 검시를 두 번 시행하는 제도다. 즉 살인사건 또는 살인이 의심되는 사건이 생기면 일단 해당 고을의 수령이 주검을 검사하는 초검(初檢)을 하고, 그 결과와 무관하게 이웃한 고을의 수령이 다시 한 번 검시하는 복검(覆檢)이 뒤따른다. 만약 두 결과가 일치하면 이를 받아들이지만, 서로 다르면 형조(刑曹)같은 상급 관청에서 세 번 째로 검시한다. 조선시대에는 이처럼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검시로써 죽음의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려 했다.

참고적으로 ‘별순검’은 대한제국시대에 탄생한 관직으로 조선왕조에서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존재했던 조직이다. 대한제국은 갑오개혁 이후 1894년 7월에 포도청을 폐지하고 현재 경찰조직의 효시인 경무청 또는 경위원(警衛院)을 창설했다. 품행이 단정하고 신체가 건강한 20~25세인 청년 중 시험을 통과한 이들을 황궁 숙위(宿衛) 및 경찰 임무를 수행하는 관리인 ‘순검’으로 선발했는데, 이 중에서 제복을 입지 않고 비밀 정탐에 종사하던 특별수사원을 별순검이라고 불렀다. 순검이 경찰·소방·감옥의 일반 업무 및 병사의 일부를 담당한 데 비해 별순검은 정보 임무만을 맡았던 만큼 오늘날의 사복형사(私服刑事)와 비슷한 직분이라 하겠다.

그런데 「별순검」에 시신을 해부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다. 당시의 별순검은 수사에 관한 한 매우 색다른 위치에 있었다. 그것은 조선시대임에도 불구하고 파시(破視, 배를 절개한다는 뜻으로 해부를 말함)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별순검에는 내의원(內醫院)에서 파견된 의원도 있었다. 별순검이 등장한 당시에는 이미 서양의 과학기술이 들어와 있었으므로, 중요한 사건이 생길 때마다 참여하여 한정적으로 파시를 행했다. (계속)

참고문헌 :
「비너스는 왜 바람을 피웠을까」, 전용훈, 과학동아, 1998년 1월
「조선 시대의 법 제도와 유교적 민본주의」, 이재룡, 東洋社會思想, No.3, 2000
「역사 및 인물을 통해 본 Forensic Science-국가 주도의 철저한 과학적 규명」, 월간과학교육, 사이언스올, 2009.
『역주흠흠신서』, 정약용, 현대실학서, 1999
『세계를 속인 거짓말』, 이종호. 뜨인돌, 2002
『역주증수무원록언해』, 송철의 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파시』, 여설하, 도서출판 큰방, 2007
『조선 최대의 과학수사 X파일』, 이종호, 글로연, 2008

■ 이종호 과학국가박사

   
 
1948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 프랑스 페르피냥 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 취득. 1982년 과학기술처의 유치 대상 해외 과학자로 선정돼 프랑스에서 귀국해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KIER)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기.

'노벨상이 만든 세상',‘로마제국의정복자 아틸라는 한민족’등 85권의 과학 도서를 저술했다. 현재는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푸른한국닷컴, BLUEKOREADOT

이종호 mystery123@korea.com

<저작권자 © 푸른한국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ad39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