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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情)의 힘

기사승인 2019.10.13  17: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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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온라인커뮤니티
정은, 깎고 또 깎아도 다시 돋아나는 봄풀과 같아

[김성춘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 삼국지에서 왜 제갈공명은 울면서 마속을 베었을까? 마속의 형 마량과의 인연도 있었지만 마속과는 숱한 전투에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김소월의 스승 김억이 동심초를 번안한 것은 설도의 시 1,2구 「꽃이 피어도 함께 바라볼 수 없고 꽃이 져도 함께 슬퍼할 수 없네. 花開不同賞 花落不同悲」에 시정(詩情)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정은 그리움을 몰고 온다.. 누구나 옛정이란 말에서는 가슴이 뭉클하고. 노스텔지어나 여정(旅情)이란 말에서는 가슴이 설레며, 부정(父情)이나 모정(母情)이란 말에서는 눈물이 난다. 세상에 정이 없다면 그것은 꽃이 없는 봄길 또는 눈 내리지 않는 겨울밤일 것이다.

정에 대해서 옛날 사람들은 오늘날의 사람들보다 이해를 더 잘 했다.

중국 원나라 문인 원호문은 「만약 정이 없다면 짝 잃은 기러기의 서글픈 울음소리가 있을 수 없고, 유란지와 초중경의 영혼인 원앙의 울음소리는 그치며, 한빙과 하씨의 영혼이 깃든 상사수(相思樹)가 그렇게 자랄 수 없고. 맹강녀의 울음소리에 장성(長城)이 무너져 벽돌 속에 겹겹이 쌓인 백골들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하여 정만이 지극하여 하늘에 닿는다고 말하고 있다.

「동양의 세익스피어」라는 탕현조는 그의 희곡 모란정(牡丹亭) 서문에서 「정은 어디서 생기는지는 모르나 한 번 주면 깊어지니/정이 있으면 산자도 죽을 수 있고, 죽은 자도 살아날 수 있다.」고 하여 정을 어떻게도 설명할 수 없는 운명(運命)의 범주에 넣었다.

조선 정조 시대 불우한 문사였던 이옥은 「천지만물을 관찰하려면 사람을 관찰해야 하고. 사람을 관찰하려면 정을 살펴야 하며, 정에 관한 관찰은 남녀간의 정보다 다 진실한 것이 없다.」고 하여 정을 가치체계의 최상위에 두었다.

확실히 정을 붙이면 타향도 고향처럼 느껴지고. 정이 들면 박색부인도 미녀처럼 보이는 법이다. 「정의 힘」인 것이다.

은정(恩情) 때문에 옛사람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았다. 정 때문에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인은 곱다랗게 화장을 하는 것이다.

고려의 문인 정지상은 「대동강 물은 마를 날이 없어라.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하니.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라고 하여 임을 보내는 정을 곡진히 그리고 있다.

당나라 시인 왕유는 「꽃만 봐도 눈물이 주루룩/초왕과는 끝내 말하지 않았네. 看花滿眼淚 不共楚王言」라고 하여 비록 식부인은 초왕에게 와 아들 둘을 낳고 살고 있지만 전 남편 망국(亡國)의 군주 식후(息侯)를 그리워하는 정을 담고 있다.

정이 없었다면 백제 여인 한주가 고구려 안장왕이 태자였을 때 나눈 정 때문에 고을 태수의 회유에도 일편단심을 말하고 뒷시대에 조선의 성삼문이나 성춘향이 반복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중국 한나라 황제 선제는 민간에 있을 때 아내로 맞은 허황후와의 정 때문에 그 사이에 낳은 유석을 태자로 앉힌다. 「장차 나라가 망한다면 이 아이 때문일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진승은 「어찌 제비나 참새 따위가 고니나 기러기의 뜻을 알겠느냐.」고 했지만 왕이 되자 옛정이 솟구쳐 고향친구들을 부르고. 오삼계는 진원원이라는 가기(歌妓)와의 정 때문에 청나라에 투항한다.

광무제 유수가 혼자 된 누이 호양공주의 규정(閨情)을 헤아려 「옷이 낡으면 새 옷으로 갈아입고 신분이 높아지면 새 장가를 든다고」들었다며 넌지시 송홍에게 묻자 「조강지처는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라며 거절한 것은 부인과 고생을 같이한 정 때문이었다.

조선 선조 때 재상을 지낸 심희수는 금산군수로 있을 때 일타홍이 죽자 수레에 관을 싣고 나룻배로 금강을 건너면서 처량하게 만시(輓詩)를 읊는다. 「금강에 가을비 내려 붉은 명정 적시니/정다운 내 님의 눈물인가 보네. 錦江秋雨丹旌濕 疑是佳人別淚餘」라고- 구정(舊情)이 사무쳤던 것이다.

황진이가 자기 몸을 도구로 쓴 것. 총각의 관 뚜껑에 자기 속곳을 얹어주고, 이사종과 계약 동거를 하며, 금강산 여행 중에 중들과 살을 섞고. 죽어서는 주검을 벌판에 버려 짐승의 밥이 되게 한 것은 모두 세상에 대한 정 때문이었다.

정은, 깎고 또 깎아도 다시 돋아나는 봄풀과 같고. 잔잔하다가도 때로는 넘치기도 하는 강물과 같은 것임을 황진이는 알고 있었다.

푸른한국닷컴, BLUKOREADOT

김성춘 kimmaeul@hanmail.net

<저작권자 © 푸른한국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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